기독논단 > 본 보 주 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세 나라가 서로 모셔가려는 유해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기사입력  2016/07/28 [17:54]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사람이 사망하면 영(spirit)과 육(body)이 분리된다. 그래서 각각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사망자를 ‘돌아가셨다’(別世)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이 하늘로 올라갔다면 육은 본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유해를 땅 속에 매장하는 것이다.
 
또 오래된 무덤을 파보면 흙 밖에 없다. 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살 때만 ‘인간’(living soul)인 것이고 인간이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다.
 
군에서도 살아있는 장병은 인사참모부에서 생명체로 다루지만 일단 죽고 나면 군수지원단 병참부대에서 물건으로 취급한다. 더 이상 인간(생명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이나 안중근 의사처럼 삶의 가치가 존경받을 만하면 유해의 가치도 달라진다. 그것은 결국 이름값이고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라 볼 수 있다.
 
즉 ‘아무개’라고 일컬을 때, 그 사람의 독특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생전에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고상한 생애였는가? 남루한 생애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유명한 시사주간지 「TIME」에 의하면 마더 테레사 수녀의 유해를 서로 자기나라에 안치하려고 인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세 나라가 지금 경쟁하고 있다고 한다.
 
1997년에 타계한 테레사 수녀의 유해는 현재 그가 50년 간 빈민구제활동을 했던 인도의 콜카타에 안치되어 있다. 그녀는 1910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현 마케도니아)에서 아르메니아계 아버지와 알바니아계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18세에 인도로 가서 그 나라에 귀화했다. 그런데 알바니아 총리는 2012년 10월 9일 테레사 수녀의 유해를 알바니아로 보내달라고 인도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한다. 이에 대해 인도정부는 “테레사 수녀는 인도 국민이었다.”며 그 요구를 일축했다.
 
양국의 주장에 마케도니아까지 가세해 “테레사 수녀는 마케도니아 땅에서 태어난 마케도니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해를 안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 인도 웨스트 뱅갈의 가톨릭 신자들은 알바니아의 유해 송환요구에 맹렬히 반대하는 시위(데모)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 정부가 뒤늦게 유해를 모시겠다고 나선 것은 자기 나라의 혼란해진 국론의 통합을 위해서는 국가적 상징이 필요한데 그 상징적 인물로 자국민이 테레사 수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테레사 수녀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갔고 그 유해만 인도의 캘커타 땅 지하에서 한 줌 흙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름 없는 보통 시민 같으면 이렇게 유해를 요구하지도 않을뿐더러 누구든지 얼른 가져가라고 했을 것인데 테레사 수녀는 그가 살아온 50년 인생이 정말로 아름다웠고 희생적이며, 선량했기 때문에 그 골분까지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생겼고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값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죽고 난 후에도 테레사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을 것이다. 꼭 테레사 수녀처럼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어도 좋다. 한 종교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거나 군부대의 모범장병이 되거나 제자를 뜨겁게 사랑한 각급 학교의 교육자여도 좋다. 기업을 부흥시킨 경영인도 좋고 특허나 논문을 많이 낸 연구자라도 좋다. 아니 이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남편과 아내,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훌륭한 목회자나 교육자로 기억돼도 좋을 것이다.
 
그가 맡은 직에서 퇴임했을 때, 그 직장에서의 평가, 그가 죽은 뒤에 지인들이 언급하는 추억이야기들이 진정 그의 인간평가가 될 것이다.
 
살구는 죽어서 씨를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인간은 죽어서 이름(명예)를 남긴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만들어 붙이는 ‘명패’보다 남들이 만들어 세우는 ‘비석’이 더 중요하고 낳을 때 모습보다 죽을 때 모습이 더 중요하다.
 
“선한 이웃이었는데…”, “고마운 선생님이었는데…” “따뜻한 지도자였는데…” 같은 그리움과 후일담이 있어야 제대로 산 것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가 남긴 언어와 발자취 및 선행이 무명의 비석으로 역사에 족적을 남긴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운영이사장=정민량 목사ㅣ 발행인=오종영 목사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6/07/28 [17:54]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 도배방지 이미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주님의 지상명령과 약속 (마태복음 28:16-20) 179호 / 오종영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⑤ / 편집부
“권순웅 목사, 다양한 분야의 총회 섬김의 경험 통해 부총회장 후보의 길 준비하겠다” / 오종영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 그는 누구인가?④ / 편집국
봉쇄수도원에 입소하는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 / 오종영
하나님의 말씀을 왜 지켜야 하는가? (신명기 4:1-14) 197호 / 편집부
주사랑교회 임직감사 예배드리고 장로·안수집사·권사 등 일꾼 세워 / 오세영
특별기고)영지주의란 무엇인가(3) / 오종영
한밭제일장로교회 장로, 안수집사, 권사 임직감사예배 통해 새 일꾼 세워 / 오종영
‘소그룹 거대한 변화’CTS대전방송과 대전성시화운동본부 제7회 성시화포럼 및 소그룹 컨퍼런스 개최 / 오종영